애플 컴퓨터의 못 다한 꿈 ( 잡털 신세가 된 명품 붓 )
글. 오상문 sualchi@daum.net
아무리 좋은 붓이더라도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가치나
활용도가 달라집니다. 어제 제가 애플에 대한 글과 사진을 올렸는데 그
자료를 올리면서 떠오르는 기억과 생각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애플 II 컴퓨터를 만나다”
80년대 중반까지 애플컴퓨터는 독보적인 PC(개인용 컴퓨터)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종로 세운상가에서만 아마도 한 해에
수십만 대의 애플컴퓨터가 거래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정확한 세무 자료나 집계 자료가 없어서 그야말로 며느리도 모르는
숫자입니다. 그렇게 팔린 애플컴퓨터의 대다수 운명은 애들 게임기나
회사, 기업 등의 사무관리용이었습니다. 즉, 우리나라의 애플컴퓨터
사용자는 '도' 아니면 '모'였습니다.
저는 80년대 중반에 친구에게서 중고 애플II 컴퓨터를 샀습니다. ^O^
등산용품을 구입하려고 제게 컴퓨터를 싸게 준 아주 좋은 친구였습니다.
기억에는 64KB램,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 확장 한글카드에 조이스틱까지
달린 엄청난 고급 컴퓨터였습니다. 당시 애플 사용자라면 잘 아시겠지만,
물가를 고려해보면 요즘 PC보다 비싼 고급형입니다. 또한 빈약한 소리를
보완하는 ‘모킹보드’라는 사운드 카드를 세운상가에서 사서 달았습니다.
아무튼 이 엄청난 고급 PC를 초반에는 게임기로만 사용했습니다.
오락실 고전 게임인 너구리 게임처럼 여러 층을 돌아다니는 ‘로드런너’
게임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다른 게임들도 많았지만 저는 프로그래밍
에 빠지게 됩니다. 애플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구조상 프로그래밍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즉, 애플 컴퓨터는 사용자가 롬 베이식을 쉽게
접하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무튼 이 인연으로 25년이 되는 지금도
업무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에도 미학이 있다는 걸 알려준 애플 프로그래밍”
애플 프로그래밍은 지금처럼 아주 복잡한 프로그래밍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심플함의 극한 경지입니다. 단순하고 작은 프로그램이 미덕인
세상입니다. 애플에서 사용 가능한 메모리가 제한적이다 보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바이트라도 아끼려는 코딩을 했습니다.
응용프로그램이 크지 않았지만 기능은 상당히 우수했습니다. 현재
오피스 프로그램의 대표들인 엑셀이나 데이터베이스 관련 도구의 기본과
설계는 애플 응용프로그램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애플에도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윈도우용 프로그램이 화려하고
규모가 크지만 애플용 응용프로그램이 더 친근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몰락하는 애플, 떠오르는 IBM-PC”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것은, 미국과 우리의 애플컴퓨터의 활용도와 시기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이점은 분명 우리가 반성해야 합니다.
이 내용이 제가 말하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우리는 애플 컴퓨터를 이용하여 무엇을 했는지는 당시 컴퓨터
잡지들의 기사 내용을 분석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의 대부분은
PC 유틸리티, 게임, 프로그래밍에 대한 내용이 대다수이고 사무 활용에
대한 기사가 종종 섞인 형태입니다. 이 수준은 IBM-PC가 국내에 들어올
때까지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IBM-PC가 국내에 들어오자 애플컴퓨터는
그야말로 애들 컴퓨터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렇게 국내의 애플컴퓨터는
제대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수명이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1989년 여름 전역한 뒤로는 애플컴퓨터를 뒤로 하고 IBM-PC에
빠지게 됩니다. 이미 그 당시엔 IBM-PC가 대세였고 대학교 컴퓨터 강의도
단말기 아니면 IBM-PC를 기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애플컴퓨터는
창고 속으로 처박히는데, 몇 년 후에 결국은 폐기 처분 신세가 됩니다.
IBM-PC는 애플컴퓨터보다 훨씬 사양이 좋았고 기술 역시 앞섰습니다.
처음엔 자판만 봐도 겁이 났습니다. 애플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키가 달린
자판을 보니 저걸 언제 다 외워서 쓰나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애플의 운명과 클론의 위력”
미국에서 애플 컴퓨터가 상용으로 만들어진 이후 국내 애플컴퓨터가
개인용으로 소개된 시간 차이가 아마 4~5년 정도 또는 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애플이 몰락하는 시기는 오히려 미국보다 더 빨랐습니다.
미국에서는 IBM-PC가 나온 이후에도 상당수 애플 컴퓨터 마니아들이 남아
있었고, 이들이 맥킨토시 컴퓨터 마니아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IBM-PC는 애플컴퓨터와는 다르게 사무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애플컴퓨터에 부족했던 기능들을 보완되거나 확장되었기에 일반 PC
시장도 급속히 장악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클론 제품이 쏟아져 나온 덕분(?)이기도 합니다.
애플컴퓨터도 이런 클론(복제품이라고 봐야하는지 아무튼)이 사용자 증가에
기여했듯이 IBM-PC도 클론 제품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국내에선
대부분 세운상가에서 조립된 이런 클론 제품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나를 놀라게 만든 공장형 농업 시스템과 애플컴퓨터”
아마 1980년대 후반 아니면 90년대 초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컴퓨터
잡지의 대세는 IBM-PC가 되었고 8비트 컴퓨터 기사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애플은 제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자동화 시스템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우연하게 어떤 기사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농장을 컴퓨터로 관리하는 자동화 시스템인데 시간에
맞게 햇빛가리개(차양막), 물주기, 온도조절, 비료나 농약, 주문 등의 처리
과정과 관리를 자동화 시킨 온실형 농업 시설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저런 자동화 시스템이 갖춰지겠지 하면서 기사를
살펴보다가 한 장의 사진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사진 속에서는 아직도
멀쩡하게 동작하는 애플 II 컴퓨터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곳 관리자는
그 한 대의 애플컴퓨터가 전체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으며, 잘 동작하기에
앞으로도 동작하는 한 계속 사용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고철로
아니 폐기물로 버린 애플컴퓨터를 자동화 시스템에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애플컴퓨터가 사용되는 기사를 찾아보다가 또 놀라게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 교수님 기사인데 사진 속에 나온 그 교수님 집무실에
애플컴퓨터가 있는 것입니다. 그 교수님은 학사 관리와 논문 관리 등에
애플컴퓨터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학은
IBM-PC로 당연히 도배를 끝냈던 때이고 교수님 집무실 컴퓨터는 학생의
것보다 더 신형으로 설치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절입니다.
계속 더 찾아보니 미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애플컴퓨터를 활용하는 곳이
제법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사를 살펴보면서 제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애플컴퓨터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정확한 일기 예보, 슈퍼컴퓨터 100대를 줘도... 글쎄?”
우리나라 일기 예보가 부정확하다고 불평할 때마다 늘 궁색한 답변으로
늘어놓는 게 슈퍼컴퓨터 타령입니다. 아, 슈퍼컴퓨터만 있으면 정확해질까요?
저는 ‘아니다’에 한 표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소프트웨어 사고는 8비트
컴퓨터 시절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반에서는 슈퍼컴퓨터 100대를
설치해줘도 틀리는 건 계속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o^;;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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