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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정(연개수영, 연개소정)


연수정이 활약한 성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연개소문의 여동생으로 추정된다. 당태종 침략 전에 요동반도 석성의 지휘관을 맡았다. 당 침략을 대비하여 수군을 크게 양성하였다.

645년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하자, 당 수군의 해상기지 창려, 성산을 공격하여 함선 100여척을 불태우고 2만여 명을  사살했다. 고구려 중앙군은 주필산에서 크게 패전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으나. 연수영은 대흠도와 광록도 등지에서 전선 50여 척을 불태우고 병력 8천여 명을 사살했다. 또한 노백과 가시포에서 전선 80여 척을 불태우고 5천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때 연수영의 뛰어난 전술 덕뿐에 아군 피해는 적었다고 한다. 연수영은 당과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한 덕분에 수군원수로 승진한다.

당태종 본대가 안시성을 공략하던 시기에, 연수영은 대장산도에서 당나라 수군과 전투를 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그 전투에서 당군은 전선 1천여 척과 10만여 명을 동원했는데 절반 가량을 잃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 수군은 엄청난 미귀환자가 있었고, 귀환한 수군 총책임자는 하옥되고 수군총관은 참수를 당했다고 하니 당나라 수군이 참패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아쉽게도 비문의 탁본은 중국에 전해질 뿐 국내에서 확인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연수정이 활동했다는 곳의 지역유래나 향토지, 안내판, 민간야담을 통해 연수정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연수영은 16세기 이후에나 등장하는 공사전법(攻射接戰: 사거리가 긴 무기를 활용하는 전투방식)을 644년에 시도했을 정도로 전술이 뛰어났다. 이후에 고구려 수군 지휘관 장문휴가 732년 등주상륙작전에서 당나라를 꺾은 것도 이러한 전술 덕분이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shorts/5ANWdPJW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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